내가 속한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세상은 노동자협동조합이다. 직장이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고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물론 어려운 점도 많다. 노동자협동조합에 국한하자면 직원인 동시에 조합의 주인이라는 위치가 애매하다.
조합의 주인이라면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어쩔 수 없다. 아직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토론하고, 공부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합은 더욱 단단해지고, 어떤 위기가 닥쳐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처음 입사한 조직이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다. 조합원들과 자주 만났고, 이야기 했다.
또 협동조합간의 협동이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조직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인내와 소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하는 분들을 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열손가락서로돌봄사회적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협동조합을 만든 목적이 분명했다. 2013년 창립하고, 2015년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은 후 올해 3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소모임으로 시작한 모임이 이제는 번듯한 기업으로 성장한 셈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조합원들간 소통, 조합재정, 사업운영 등 수많은 갈등과 문제가 있었다. 좌절은 있었지만 포기는 없었다. 서로 격려하고, 지혜를 모았다. 이것이 바로 협동조합의 힘이다.
열손가락 모임
김오례 이사장에게는 뇌병변장애를 가진 딸 예지가 있다. 돌 무렵 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이 아이는 한평생 걸을 수도 말할 수 도 없을 겁니다” 하고 청천병력과 같은 진단을 내렸다.
“그 당시 예지와 함께 죽을 생각까지 했어요. 하지만 예지의 언니들이 이미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엄마 없이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슬픈일이라 생각해서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온 가족이 힘들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정보가 없었고, 경험있는 사람도 없어서 예지를 장애아동 전담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때 인연이 되어 뇌병변장애인 부모 모임인 열손가락이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모임 내 멀티동화 동아리가 있었고 한 번 배워보고 싶었다.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손가락 모임의 활동은 장애인 자녀들과 그 가족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도 하고, 특히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며, 멀티동화공연 소모임을 만들었다.
소모임을 통해 서로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말 못할 고민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당시 눈빛만 봐도 아픔을 공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소모임 활동을 하면서 공연 연습 뿐만 아니라 기금을 모으는 활동도 했다. 엄마들이 커피도 팔고, 배달도 하면서 어렵게 종자돈을 마련했고, 숙원사업이던 중고 장애인리프트차량을 구매했다.
열손가락장애인주간보호센터
열손가락서로돌봄사회적협동조합은 2013년 10월 창립 후 11월부터 장애아동 방과 후 교실을 운영했다. 다만 이용자가 많지 않아 수요조사를 다시 진행했고, 주말돌봄교실에 대한 수요를 확인했다. 2014년 경기도 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관계자들이 조합에서 와서 주말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이것을 벤치마킹하여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주말돌봄교실을 운영했다. 이때 안양시 가족봉사단의 참여로 이용자가 늘어났고, 조합원들의 요청에 따라 방학돌봄 교실도 열었다.
이런 활동들을 토대로 2017년에 열손가락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안양시로부터 인가받았다.
주간보호센터는 학령기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자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의 자녀들도 이용하고 있다.
“대부분 지체, 언어, 인지장애를 가지고 있다보니 위험에 매우 취약합니다. 저희들은 최대한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입니다.”
멀티동화소모임
열손가락 자조모임을 통해 멀티동화공연 소모임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컸을 때 뭔가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야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속에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뇌병변장애 1급이라고 해도 다 같지가 않습니다. 저희 예지처럼 인지도 전혀없고, 언어도 안되고, 사지마비형도 있는 반면 의사소통을 하고, 손기능도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모임이 벌써 6년째 접어듭니다.”
처음에는 소모임을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들이 시간대를 맞춰 연습을 하다 보니 아주 느리게 진행됐다. 2년 이상은 움직이는 동화를 만들기 위해 교육을 하고, 구연연습을 했다. 드디어 2015년에 40분 분량의 공연을 만들어 지역에 있는 장애인시설에 자원봉사활동을 나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멀티동화공연을 통해 장애인식을 개선하고, 성인기 뇌병변장애인들의 자립을 추구하겠다는 사회적 목적으로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받았다.
이후 사업개발비지원사업에 참여하여 창작인형극이 탄생했는데, 바로 ‘동그란 눈 뾰족한 눈’이라는 인형극이다. 이 인형극은 장애인 자녀를 키울 때 주변에서 바라보는 뾰족한 시선을 모티브로 했다. 약 1000여명이 넘은 인원이 관람했고, 600만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멀티동화공연의 가치는 그 과정에 있다.
우선 멀티동화를 만들기 위해 본인이 생각했던 좋은 동화를 가지고 와서 다 같이 읽어본다. 깔깔 웃기도 하고, 율동도 하면서 토론이 진행된다. 서로 소통하는 기회인 셈이다. 계속 연습을 하면서 대본을 수정하는데 그 속에서 날카로운 대사들을 수정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일반인들이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뿐만 아니라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의 비인권적인 모습도 돌이켜보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의 매력
처음 협동조합을 만들었을 때, 민주적으로 운영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합원들간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큰 틀에서 서로간의 필요성은 동일했지만 세세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와 반하는 결정들이 내려질 때면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그것이 공동의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는 경우 더욱 극렬하게 표출되었다.
“사실 저희도 작년에 많은 조합원들이 탈퇴했습니다. 잘잘못을 떠나 토론의 방식이나 결과에 아쉬움이 큽니다. 저희 기관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항상 강조해요. 꼭 필요한 영역인지, 구체적인 사업과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실행도 할 것을, 마지막으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꼭 감사의 마음을 전할분이 계신데 성공회대 김동준 교수님이세요. 창립 전부터 지금까지 어려움이 있으면 늘 교수님께 여쭤봤습니다. 그때마다 원칙을 다시 설명해주시고 항상 조합원들의 의견을 들으라고 하셨지요”
열손가락서로돌봄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창립 이후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조합원들의 참여를 높이는 부분이었다. 현재 30여명의 장애인 가정으로 구성된 소비자조합원들과 30여명의 후원자조합원들이 있다.
일상적인 활동은 대부분 소비자조합원들이 하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소통의 문제, 조합사업 결정의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다섯 개의 마을모임으로 중요사안들을 단위별 토론으로 활성화시키고 있다.
어려움도 있지만 그 동안의 활동을 통해 느낀 것은 협동조합의 원칙들이 결국은 구성원 개개인을 귀하게 여기고, 오히려 조직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김오례 이사장은 내가 늙어서 아이를 케어하지 못해도 열손가락서로돌봄사회적협동조합이 우리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는 조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했다. 주간보호센터도 만들고, 단기보호센터도 만들고, 평생학습교육원도 만들어 종합적으로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야기 했다.
이상적일 수 있지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면 못할게 무엇인가. 결국 협동의 힘이란 빨리가는 것이 아니라 멀리가는 것이다. 김오례 이사장을 비롯해 열손가락서로돌봄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을 힘차게 응원한다.
취재. 글 사회적기업지원실 박정기 대리